정확히 1주만에 올리는 2편.
환경성 보고서
#002
#002
츠치미야 카구라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창 친구들과 맥주잔이 오가는 가운데 떠들썩하게 수다를 떨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문자가 온 것이다. 메시지는 간단했다. 즉각, 현재 위치한 바 오른쪽 골목으로. 옆골목에 있는 것은 미네 실장뿐만이 아니다. 이와하타 부실장도 나와있고, 경시청 대령(對靈)특수기동과의 타키구치 츠이나(滝口ツイナ) 경부보도 나와있다. 뱃속이 싸해짐을 느끼며, 츠치미야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이와하타 아저씨?”
“미안하다 카구라. 긴급사항인지라.”
이와하타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빼물었다.
“그나저나 츠이나 너는 여기 왜 왔어? 노리쨩 만나고 갈래?”
타키구치 경부보가 손을 내저었다.
“아, 그것도 좋겠지만 일단은 나중에요.”
헤헤. 얼굴 빨개졌네. 츠치미야의 입 모양이 고양이 입처럼 변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때 그 만남 이후론 장난기가 발동하면 입 모양이 항시 이렇게 변하곤 했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인지. 츠치미야가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실장님. 말씀하시죠.” 타키구치 경부보가 옆에 서 있던 국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간단히 말하지.”
갑자기 이와하타가 끼어들었다.
“저기 실장님, 그런데 이거 아직 확정된 정보도 아니지 않습니까. 괜히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늦었어.” 실장이 단번에 말을 끊었다.
미네 후지코 실장은 평소와 똑같았다. 약간 작은 키에 스리피스 수트, 굵은 진주 목걸이, 짧게 친 은발, 문서를 읽을 시에만 끼는 은제 반테 안경, 그리고 완전 금연건물인 사무실 안이건 어디서건 상관없이 피우고 싶을 때마다 항시 빼어무는 체스터필드 담배. 태도는 항시 오만할 정도로 당당하고 차갑다. 일반 공무원이라면 어느새 은퇴해서 낙하산으로 공기업에서 돈이나 받아먹다가 그나마도 그만두고 연금으로 살아갈 나이이지만, 그녀는 벌써 수십년째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전쟁을 벌여왔다.
물론 전쟁은 항시 대가를 가져온다. 그녀를 타겟으로 한 암살 기도는 수없이 많았고, 그 탓에 환경성이 입주해 있는 시로가네(白金) 본부는 심심하면 가스가 터지거나 합선이 일어나 불길 치솟는 문제투성이 건물이라고 먹지 않아도 될 욕을 잔뜩 먹어야 했다. 물론 안가까지 합친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미네 실장은 사건 다음 날(혹은 퇴원일)에는 붕대를 붙이고 사무실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국원들에게 일이나 하라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한 실장의 얼굴에도 오늘은 초조함이 가득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츠치미야는 뱃속이 더더욱 꼬이는 느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말 정도는 해주셔야 저도 알지요?”
츠치미야의 질문에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사야마가 입국한 것 같다.”
순간 츠치미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네 실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나리타에서 오늘 ‘제인 왕’이라는 사람이 입국했더군. 미국 국적으로. 그런데 얼굴 인식 프로그램이 딱 잡았어. 이사야마야. 미 국무부에 연락해 보니 그런 사람은 없다더군. 우리 추측이 맞았어. 이사야마가 그 무간지옥에서 되돌아온거야.”
살아 있었구나.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츠치미야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런데 요미 언니가 돌아왔다고? 요미 언니가? 순간 등골부터 오한이 쓸고 지나가는 느낌에 츠치미야가 몸을 떨었다. 간신히 입을 뗀 그녀가 물었다.
“어디서 입국한 거죠? 미국은 분명히 아닐 거 아녜요.”
타키구치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폴더를 열었다.
“제인 왕은 오늘 파키스탄 항공사 편으로 파키스탄 라호르 공항에서 탑승, 도쿄에 도착했어요.”
츠치미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파키스탄? 언니는 도대체 파키스탄에서 뭘 한 거지? 타키구치가 물었다.
“파키스탄까지 가서 대체 뭘 하고 왔을까요?”
“거기는 테러리스트 소굴이야. 거기서 뭘 했겠어?”
츠치미야의 질문에 실장이 답했다. 테러리스트라니. 츠치미야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뭐, 아직 확정은 아니야. 우리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사야마는 그 정도로까지 미치진 않았으니까.”
“실장님, 돌 때문에 미쳐서는 자기가 그렇게 아꼈다던 카구라 선배 어깨에 나뭇가지 쑤셔박고 죽이려 들은게 7년 전인데 그 정도면 충-“
타키구치 경부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츠치미야가 발 밑의 드링크병을 집어들더니 반대편 골목 벽에 힘껏 내던졌다. 병은 요란하게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박살났다. 갑작스러운 돌출행동에 놀란 이와하타가 츠치미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츠치미야 카구라, 뭐 하는-”
“아니야, 그냥 내버려 둬.”
미네 실장이 이와하타를 툭 치며 말했다.
“분노는 이해해. 하지만 일 할 때는 버리도록 해. 분노는 머리를 탁하게 하고, 탁해진 머리는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니까. 그리고, 앞으로 이사야마가 사건을 또 터뜨리면 그때부터 사건은 츠치미야가 담당한다 알겠지?” 츠치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장이 다 태운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껐다. “그리고, 며칠 내로 발표가 될 것이고, 다들 짐작은 하겠지만, 대규모 초자연 테러에 대비해서 우리 조직을 중심으로 조직이 개편될 예정이다. 앞으로 경시청 대령특수기동대, 그리고 방위성의 특수전술대 잔류인원은 우리의 지휘를 받을 거고, 우리 이름도 확장에 맞추어 ‘초자연현상특별대책국’으로 개명할 거야. 누가 어디로 가는가는 나중에 알려주도록 하지.”
체스터필드 갑에서 새 담배를 뽑아들어 불을 붙이며 실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진구지가 전술지원국장으로 복귀한다.”
그 한 마디에 이와하타와 츠치미야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진구지 실장님은 키리만으로도-“
“말도 안돼요. 아야메 언니는 은퇴한지가 7년 전-“
“그런데도 복귀한다고 떼를 쓰는데 내가 어쩌겠어? 지금처럼 일손 달리는 때에 그런 아이가 지원하는 걸 막기도 힘들어.”
그 다리병신을 어느 자리에 앉히느냐도 문제였지만. 미네가 속으로 투덜대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걱정 마. 쿄코가 옆에서 보좌할 거야. 미네 쿄코(峰京子), 알지?”
“실장님 손녀요? 알죠. 츠치미야 선배랑도 친하죠?”
“뭐 그런 셈이지.”
“아하.”
츠치미야의 질문에 타키구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은 다 끝났군.”
미네 실장이 연기를 내뿜었다.
“다들 가보아도 좋아. 그리고 츠치미야.”
“예?”
걸어 나가려던 츠치미야가 몸을 돌렸다.
“일단은 시험 끝난 거 축하한다. 하지만 이제 할 일이 많으니 휴학이라도 하는게 어떻지 싶다만.”
“그렇게 해야 한다면 차라리 지금 사표를 써서 드릴게요. 이제 시로도 소멸하고 없는 마당인데, 저에게 이용가치가 남아나 있던가요?”
츠치미야가 입꼬리를 올렸다. 얼굴은 무표정한 채로. 그녀가 무어라 츠치미야를 나무라려 드는 실장에게 쐐기를 박았다.
“그러면 전 친구들 데려다 줘야 해서 이만.”
냉랭한 기운을 풍기며 츠치미야는 뒤로 돌아 골목길을 나섰다. 미네 실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엔 저런 애가 아니었는데.”
“이 바닥에서 그나마 저 정도로 망가져서 끝난 게 그나마 다행이죠. 그래도 말이 저렇지, 다시 돌아올 겁니다.”
이와하타가 자신의 양복 포켓에서 마일드 세븐 갑을 빼어 한 개피 물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라도 있나?”
“이사야마 요미에 대한 일이고, 저 아이는 츠치미야 카구라니까요.”
이와하타가 흐리게 미소지었다. 담배 맛이 간만에 쓰게 느껴졌다.
★
데려다 주겠다는 니무라의 친절도 거절한 채, 츠치미야는 술에 취한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피에스타로 집에 도착했다. 츠치미야 카구라는 이사야마 나라쿠의 옛 집을 사들여 살고 있었다. 이제 카구라의 옛 방은 약 두어달 전부터 얏치와 미쿠가 지내는 방으로 바뀌었고, 카구라 본인은 요미의 옛 침실로 방을 옮겼다. 차를 차고에 세워놓고 술에 거나하게 취한 둘까지 방으로 보낸 다음, 츠치미야가 간 곳도 자신의 새 침실이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츠치미야가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벽장을 열었다. 벽장 안의 옷들을 젖히자 나무로 된 튼튼한 라이플 케이스가 나왔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나무 상자를 열어 몇 개월간 상자 속에서 잠자고 있던 영국제 리-엔필드 라이플(*1)을 꺼냈다. 마이케루 12호를 니무라에게 넘겨준 후부터는 항시 애용하던 물건이었다. 그리고 3년 전 산중에서의 대혈전 끝에 백예마저 소멸한 후로는 그나마도 퇴마사 일을 거의 때려 치운 터라 최근에는 소제만 간간히 해 주던 판이다.
이걸 또 쓰게 될 줄이야.
그녀가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탁자를 정리한 다음, 츠치미야가 케이스에 들어 있던 청소도구를 꺼내 소총을 소제하기 시작했다. 소총 소제를 끝낸 다음에는 벽장 가장 윗칸에 쌓아놓은, 주문이 음각된 .303 브리티시 탄(*2)이 한가득 든 종이상자를 꺼냈다. 5발들이 장전용 클립에 총탄을 끼운 다음에는 탄약을 라이플 탄창에 밀어넣었다. 츠치미야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댄 것은 두 번째 다섯 발을 탄창에 밀어 넣으려던 때였다. 그녀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츠치미야 카구라입니다.”
상대방의 응답을 듣는 순간, 츠치미야는 거의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 했다.
“헬로우, 카구라-“
말도 안돼. 츠치미야의 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헤에, 전화 듣고 있는거지? 여보세요? 대답 좀 해봐- 언니가 간만에 전화 걸었는데 예절이 그게 뭐니?”
수화기 너머로 조잘대는 이사야마의 목소리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그녀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에, 그건 좀 이야기가 길어서. 여하간, 간만에 목소리 들으니 반갑지?”
그 말에 츠치미야가 으르렁댔다.
“이번엔 대체 무슨 짓을 꾸미려고 이러는 거야.”
츠치미야는 7년 전의 그녀가 아니었지만, 전화 건너편의 이사야마는 7년 전의 그 말투 그대로였다.
“우으으- 언니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가는 궁금하지도 않지?”
“언니가 죽었다는 생각 따위, 해본 적 없어.”
“와, 고마워! 역시 카구라는 역시 언제나 날 믿어 주는구나-”
그래. 믿긴 믿었지. 그런데 언니는 그 답례로 무슨 짓을 벌였지? 동경 도심의 봉인을 싹 풀어서 후지산에 봉인돼 있던 그 구미혼지 뭔지를 불러내 버렸고, 나는 그걸 잡느라 백예까지 잃었다고. 츠치미야가 이를 악물었다.
“믿어? 언니는 나를 죽일 뻔 했잖아.”
“어머? 너는 나를 아예 죽였었잖아. 기억 안 나?”
이사야마가 되쏘았다.
“그리고 넌 다행인줄 알아. 너 말이야, 그때가 계승받은지 겨우 3년 되는 시점이었어. 수십 세대를 내려오면서 결합 자체가 약해졌고, 너는 그 결합이 미처 제대로 착상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고. 그래서 목숨은 살았잖아.”
“내 영혼 자체가 걸레짝이 된 건 뭐로 설명할 거야?”
“그거 6개월만 잘 정양하면 낫는 상처잖아. 실제로도 나았고.”
“여하간 나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건 언니야.”
이사야마가 앵앵대는 톤으로 칭얼거렸다.
“아아, 사랑스럽던 우리 카구라도 7년이나 지나니까 이제 옛 일 다 잊었다는 거야? 언니는 슬프단다-“
이사야마의 거짓 투정에 지긋지긋해진 츠치미야가 이사야마의 말을 끊었다.
“입 다물어! 언니도 잘 알텐데. 인세에 죽음의 더러움을 가진-“
이사야마가 다시 치고 들어왔다.
“가진 자는 퇴치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 나도 알아! 그거, 그 때 지하터널에서 작전 뛸 때 내가 가르쳐준 거잖아. 나도 안다고.”
츠치미야가 쏘아붙이듯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무슨 귀신을 풀 작정이야?”
이사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요즘은 귀신 따위는 거침없이 베지?”
“말해.”
“확실히 원령 정도는 카구라 상대도 안 되니-“
츠치미야가 폭발했다.
“당장 말해! 말 돌리지 말고 말하란 말야!”
“아우, 소리 지르지 마! 나 귀 안 먹었어! 언니 귀를 날려버릴 셈이야?”
이사야마가 전화기 너머로 투덜댔다.
“카구라 너, 내가 아직도 세상이 싫어서 너 죽고 나 죽자고 귀신 풀고 다니는 철부지로 보여? 바-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츠치미야의 머릿속이 순간 멎었다. 복수가 아니라고?
“그러면, 무슨 의뢰 받은 테러라도 저지른 다음에 의뢰비라도 챙겨서 어디서 여생이라도 보낼 생각이야?”
이사야마가 즐겁다는 톤으로 답했다.
“응! 사우디 아저씨들, 돈 하나는 많으니까! 그러면, 카구라, 아니, 전술본부장님, 바이바이!” 전화가 끊겼다.
전화가 끊기자 집 안이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순간 츠치미야가 벌떡 일어났다. 약병. 약병! 츠치미야가 황급히 열쇠로 잠겨 있던 책상 서랍을 열어젖혔다. 서랍의 한 쪽에는 필기구들을 정리해 놓았다. 츠치미야가 필요한 것은 나머지 반을 가득 채운 약병이었다. 츠치미야가 손을 뻗어 한 병을 꺼냈다.
졸로프트(Zoloft)(*3). 50mg. 40정입.
약병에서 약을 한 알 꺼내 입에 털어 넣은 츠치미야가 매일 물을 갈아놓는 음수(飮水)용 주전자를 주전자째로 들고 물을 들이켰다. 그제서야 좀 진정이 되는지 그녀는 비틀거리며 침대 앞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턱선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물은 무시한 채, 그녀가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일어나기 전까지 그녀는 거진 30분을 그 상태로 있었다.
★
“벌써 11시인데 아침밥 정도는 해야 할 것 아냐. 아주 내가 미쳐요. 오늘이 자기 당번이면 자기가 해야지. 거기다가 자기 혼자서만 술 안 마시고 운전해 왔으면서 왜 나보다도 늦게 일어나? 집주인이라고 위세 부리는 거야 뭐야?”
“얏치, 카구라 어제 힘들어 보이던데, 이해 좀 해줘-“
야나세 “얏치” 치즈루(柳瀬千鶴)와 마나베 미쿠(真鍋美紅)는 숙취에 찌든 몸을 이끌고 츠치미야의 방으로 향했다. 원래 츠치미야 가의 밥은 셋이서 하루씩 돌아가며 하자고 정해져 있었지만, 그 수칙을 일이 바쁘다면서 서재에 쳐박히거나 아니면 전날 철야근무를 했다 혹은 서재에서 밤을 샜다고 하면서 늦잠을 자는 등의 수법으로 가장 많이 빼먹은 건 제안자인 카구라 본인이었다. 내 오늘은 이 가시나 버릇을 고쳐주겠어! 입가에는 사악한 함박웃음을 띄우며 야나세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내 오늘 이걸로 맛을 보여 줘야지.”
야나세는 왼손에 매직을 쥐고 있었다.
“얏치도 차암-“
그러나 츠치미야는 보이지 않았다. 침대도 한 쪽이 살짝 구겨진 것을 제외한다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 이게 어딜 간 거야? 차는 안 나갔는데? 아니, 아예 침대에서 안 잤잖아? 저거 미쿠가 어제 개놓은 그대로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던 야나세를 마나베가 쿡 찔렀다.
“에. 뭐?”
마나베가 벽장을 가리켰다.
카구라 바보. 또 벽장이야?
가슴 속이 답답해짐을 느끼며 야나세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부터 카구라는 일 관련으로 신경이 곤두서거나 하면 벽장 속에서 잠을 청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도 칼이나 총을 꼭 껴안은 채로. 언제 누군가가 덮쳐올지 모른다는 피해망상 때문이었다.
야나세가 침대 옆에 있던 등긁개를 집어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츠치미야의 집에서 셋이 하룻밤 묵은 적이 있는데, 아침에 멋모르고 벽장 문을 활짝 열었더니 냅다 총으로 배를 후려치고는 엎어진 자신을 그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정조준한 상태로 발포하려 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3년 전, 그러니까 고3 시절의 일이었다. 그때는 오히려 미쿠가 난리를 쳤지. 나는 비상사태라서 정신이 지나치게 날카로워진 거라고 뜯어 말리고. 한숨을 내쉬며 야나세가 등긁개를 다시 소리 나지 않게 제자리에 두었다.
“아, 미쿠, 카구라가 펜이랑 포스트잇 어디에 두는지 알아?”
포스트잇? 펜? 그녀의 질문에 마나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뭐에 쓰려고?
★
츠치미야 카구라가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도 두 시간 후의 일이었다. 뻐근한 몸을 두들기며 그녀가 엔필드를 구석에 세워놓았다.
“제기랄. 이러면 안 되는데.”
츠치미야가 거칠게 벽장 문을 닫았다. 뻑하면 약이나 먹고 예전에 무슨 스필버그 영화에 나왔던 모사드 요원마냥 매일 자신을 누가 죽이려 들지 않을까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떨며 벽장 속에 들어가 잠을 자는 생활은 자신도 원하지 않았다. 아니, 그 일은 3년 전에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이 짓을 하게 될 줄은 꿈 속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끔찍했다. 바짝 마른 입을 다시 남아있던 물로 축이려 주전자로 손을 뻗던 츠치미야의 손이 순간 멎었다. 밤 동안 그 물, 누군가가 손대지 않았을까? 순간적으로 치솟아오르는 심장박동에 츠치미야는 구역질을 느꼈다. 왜 생각을 그 따위로밖에 못해, 츠치미야 카구라? 그녀가 고개를 내저으며 물을 주전자째로 들이켰다. 순간 그녀의 눈에 노란 포스트잇 두 장이 들어왔다. 책상 앞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주전자를 내려놓은 츠치미야가 포스트잇을 보려고 창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인지야 분명히 카구라가 극비라고 잡아뗄 테니 잘은 모르고, 묻지도 않을 거지만, 힘내! 아침 겸 점심으로 ☆비스킷이랑 그레이비☆ 만들 거니까 12시 전에 이 글 보면 바로 내려와!
-미쿠☆
우리가 방에 들어와서 쪽지 써서 남겨놓고 다시 나갈 때까지도 눈치 못 채고 자고 있을 거라면 도대체 왜 바보처럼 옷장 속에서 자는 건데? 너 자꾸 그러면 침대 치워버릴 거야(笑)! 아침밥은 미쿠가 하니까 맛은 보장할 거야! (대신 오늘 저녁은 네가 사는 거다, 알겠지?)
-얏치♡
바보들. 바보들. 바보들- 츠치미야의 턱을 따라 물방울이 떨어졌다. 마시다가 흘린 물은 절대로 아니었다.
주석
(*1) Lee-Enfield. 영국이 1907년부터 60년대까지 사용했던 보병용 라이플. 10발들이 탄창이라는,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탄약량과 연사능력(잘만 쏘면 웬만한 현대 자동소총 수준), 그리고 정확성 덕택에 사랑받은 물건. 인도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생산된다. 흠좀무.
(*2) .303 British. 1880년대 생산을 시작하여 7.62 NATO탄이 나오기 전까지 영국군에서 사용한 라이플용 탄약.
(*3) 진정제 서트랄린(Sertralin)의 상표명. 강박증과 PTSD 등에 효과가 있음.




덧글